재수 시절이 있었다. 원하는 학교 학과에 진학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와신상담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같이 삼수를 하던 형이 어느날 내게 문득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는것이 어떠냐며 나를 부추겼다. 너 같이 영화를 좋아하고 남앞에 나서기(?) 좋아 하는 녀석이 왜 그 쪽으로 생각을 못하냐고. 그 형의 친형이 당시 중대 연극영화학과에 재학 중이어서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내 인생의 진로를 과감히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침내 부모님을 설득했고 원하던 학과에 진학을 했다.
우쭐대며 대학을 다니던 중 내 인생의 한 명의 은인을 만나게 되었다. 실험극장에서 <에쿠우스>란 연극을 보게 됐는데, 주인공인 앨런 역을 맡아 눈에서 광채를 띠며 연기를 하는 배우를 보게 되었다. 그 에너지가 관객을 압도하고도 남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그는 많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고, 작품마다 대중들의 가슴에 확고히 감동을 각인시키며 대한민국의 대표 배우로 당당히 섰다.
배우 최민식이다. 최민식! 나 공형진에게는 언제나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이름이다. 내 부모님이 나에게 탄생의 기회를 주셨다면 민식 형님은 내가 그래도 배우로 일생 동안 밥을 먹고 살게 하는 기회를 주셨고, 배우란 혹은 배우가 해야 하는 연기란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몸소 행하며 일깨워준 고마운 은인이다.
굳이 그의 연기혼이니 예술혼이니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대한민국 사람들, 특히 대중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분들은 최민식이란 배우가 있음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다 알고 계실테니까. 그와 연기하는 순간 혹은 그의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경외스러움을 지나 무섭기까지 하다. <파이란>의 이강재, <쉬리>의 박무영,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있었기에 우리는 참 행복했다.
그런 그가 요사이 작품활동이 뜸하다. 참으로 안타깝고 국가적(?) 손실이란 생각까지 든다. 물론 개인적인 심경의 변화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난 아무래도 몇 년전 스크린쿼터로 인한 분쟁 속에서 사람들에게 느꼈던 마음 속의 실망이 큰 요인이 아닌가 싶다.
후배로서, 동생으로서 답답하고 아쉬운 마음 가눌 길이 없다. 이 계통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느 누가 공익과 정의를 위해서 당당히 자기의지를 표명하면서 생활의 안정과 인기의 달콤함을 과감히 버린 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앞으로 작품으로, 작품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얘기해 주시는 게이 훨씬 더 진정으로 형님이 원하는 길이란 생각마저 든다.
"형님! 형님 모습을 빠른 시일 내에 뵙고 싶습니다. 형님 작품에서 제가 조금이나마 형님께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최민식이여 영원하라!
p.s 게리 올드만, 알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우린 그들이 부럽지 않다. 우리에겐 최민식이 있다.
출처 : 스포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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