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나는 개죽음 당하지 않을 거라니. 우리가 있었다고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을 거라니. 그렇게만 되면 개죽음 아니라니. 안 그러냐. 초복아."
총 4자루 등에 짊어지고 나라님 사시는 궁으로 유유히 들어가, 그야말로 '원 샷 원 킬'로 높으신 양반님네 '대갈빼기'(머리)에 총알을 박은 '추노'의 그 남자, '조선시대 스나이퍼' 업복이 공형진(41)을 만났다. 최근 종영한 KBS 2TV '추노'(천성일 극본, 곽정환 연출)는 마지막까지 녹록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끝까지 사람 마음 졸이게 하다가 끝내 눈물을 쏟게 했다.
사람 취급도 못 받던 노비가 지엄한 궁궐에 홀홀 단신으로 들어가 부조리한 세상의 원흉인 좌의정을 쏴 버렸다. 궁궐 수비대에게 붙잡혀 바닥에 누운 업복이와 궁궐 밖에 있던 또 다른 노비 반짝이 아버지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공형진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길이(장혁)도 태하(오지호)도 못한 일을 업복이가 해냈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 '추노'의 진정한 주인공은 노비 업복이
5일 식목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만난 공형진은 데뷔 20년 만에 처음으로 작품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을 끝내면 시원했는데, 이번 작품은 안 그래요. 지금도 총 들고 뛰어다녀야 할 것 같고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전화를 하고 괜히 제 뺨에 노비 문신을 해야 할 것 같고… 섭섭함이 많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가 많고, 추노 팀과 정도 많이 들었어요."
공형진이 맡은 업복이는 관동지방 최고의 포수였지만 빚 때문에 노비가 됐다. 주인집에서 도망쳤다가 추노꾼 대길 패거리에게 붙잡혀 도망노비 문신을 얼굴에 새겼다. 업복이는 양반의 간계로 노비당이 몰살당하자 홀로 궁궐에 들어가 조총으로 좌의정 이경식(김응수)과 좌의정의 첩자 그 분(박기웅)을 죽인다.
공형진이 연기한 업복이를 가리켜 곽정환 PD는 "나의 페르소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평했다.
이에 대해 공형진은 "업복이가 드라마의 실제적인 주인공이라고 하는 건 일차적으로 선배에 대한 예우인 것 같고, 둘째로 끝까지 소신을 놓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희망을 주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비 초복이(민지아)를 사랑했던 업복이는 "초복이가 없으면 안 되겠다"고 하면서도 죽을 자리를 찾아 궁으로 갔다. 공형진에게 "당신이 생각한 결말과 차이가 있는지"를 물었다.
"많은 분이 '나 같으면 초복이와 도망갔을 텐데'라고 말했어요. 비극적인 최후를 분명히 직감하고 있었을 것인데 그게 업복인 것 같습니다. 내가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소신과 신념을 놓지 않겠다. 그것이 주변 동료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끝맺음이 아닌가 하는 마음, 멋지지 않나요? 저는 그런 부분이 좋았어요."
★ "추노 시즌 2? 감독과 작가만 같다면 OK"
1990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데뷔한 공형진은 이후 '박하사탕'(1999), '파이란'(2001), '태극기 휘날리며'(2004)로 얼굴을 알렸다. SBS 드라마 '연애시대', KBS '달자의 봄' 등 브라운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 여름 곽정환 PD는 당시 그가 출연했던 뮤지컬 '클레오파트라' 현장에 대본을 들고 찾아왔다. 하지만 그에게 사극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는 '내 남자는 원시인'이라는 1인극을 하기로 돼 있었다. 영화 '방자전'도 찍어야 했고 SBS 파워FM '공형진의 씨네타운'과 케이블 방송 tvN '택시'의 진행자까지 맡고 있었다.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 양심상 '추노' 출연 제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곽 감독은 다시 그를 찾아와서 "형님이 아니면 안 된다. 중심을 잡아주셔야 한다"고 설득했다.
"처음에는 저에게 천지호 역할을 얘기했어요. 그래서 천지호 역할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업복이 역할을 제안했습니다. 꼭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도저히 피할 수 없었어요. 나를 정말 원하는구나 싶어서 의기투합하기로 했어요. 스케줄을 조정해서 지난해 8월 '추노' 팀에 합류했죠. 업복이는 기존 코믹한 제 이미지와 다른 점이 마음에 들었고, 초복이와 멜로가 있었어요. 가슴 아픈 사랑이 될 것 같았죠. 또 남들 다 칼 들고 다니는데 총 들고 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업복이 특유의 강원도 사투리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배우 강혜정, 강원도 출신 유오성의 말투를 참조했다. 벌여놓은 일이 많은 탓에 촬영 스케줄 조절도 만만치 않았다. '내 남자는 원시인' 공연이 있을 때는 '추노' 팀에게 하루 반나절의 시간을 배분했다. 그가 가면 촬영장에선 20신~30신 그의 분량만 내리찍었다. 대신 연극이 끝난 2월부터는 일주일에 4, 5일씩 '추노'에 전념했다.
멜로 욕심에 덜컥 업복이를 맡았지만 쉬운 배역은 아니었다. 추운 겨울날 그는 맨발에 짚신만 신고 개울가에서 주인 양반 드실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아무래도 추웠던 기억이 제일 크죠. 양반 옷은 안감이 달라요. 저는 노비이다 보니까 안감을 댈 형편도 아니고 12월이 되니 버선이 생기긴 했지만 대단히 추웠어요. 짚신이라는 게 젖으면 잘 안 말라요. 현장 분위기를 위해서 일부러 NG를 내고 아이스크림을 산 적도 있죠. 아이스크림 40~50개 사서 1분 만에 먹기 내기를 했어요."
노비 노릇 하느라고 생고생을 했지만 여전히 그는 '추노'에 애정이 많다. 그는 '추노 시즌 2'에 합류할 생각도 있다. 같은 작가와 같은 감독이라면 말이다.
"배우 공형진에게 추노란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이미지 변신에 강박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이런 진지한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습니다."
(KBS 2TV 드라마 "추노" 종영 즈음 인터뷰 2에 계속)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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