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형진의 공사다망] 욕심_2009.11.2
2009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그 어느 해 보다 짜릿한 명승부를 펼치며 막을 내렸다. 잘 알다시피 기아 타이거즈가 SK 와이번스를 7차전까지 가는 박빙의 승부 끝에 물리쳤다. 타이거즈는 통산 10번째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야구의 가장 짜릿한 승부라 할 수 있는 9회말 결승홈런으로 명장면을 연출했다.
현장의 관객과 구단 관계자 그리고 감독과 선수들의 감동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3년 연속 우승을 노리던 SK의 뒷심도 숱한 화제를 뿌렸다. 핵심 선수들의 부상 이탈에도 끝까지 투혼을 발휘한 SK의 저력도 박수 받아 마땅하다. 올해 우승팀인 KIA의 여러가지 변화는 우승팀으로 손색없는 결과를 낳았다. '조갈량'이라 불리울 정도로 뛰어난 용병술과 지도력을 보인 조범현 감독의 역할과 '신구 조화'를 이루며 단결된 모습을 보인 선수들도 챔피언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
올해 기아 타이거즈 돌풍의 주역은 LG에서 트레이드돼 친정팀으로 돌아온 김상현이다. 내가 LG 팬이어서 잘 알고 있는 선수다. 데뷔 10년차 중고참 선수다. 해마다 기대주 혹은 유망주로만 불리웠던 선수였다. 출장기회에 비해 이름값을 못해 조금은 답답하고 실망스런 선수였다. 군 복무시절 상무에서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 2군 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던 적도 있었지만 전역 후 1군 경기에서 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항상 목마름을 지녔던 선수였다. 적어도 LG에서는 그랬다. 그가 올초에 친정팀인 KIA로 트레이드되면서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일으켰다. 해마다 한명씩 나온다는 크레이지모드로 탈바꿈했다. 그는 KIA의 당당한 클린업트리오로 활약하며 언론의 중심에 섰다. KIA는 쾌재를 질렀고 LG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8월만 무려 15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결과적으로 홈런ㆍ타점ㆍ장타율 등 타격 3관왕에 올랐다.
그는 가장 영예로운 올해의 선수 즉 MVP로 선정됐다. 김상현을 지켜보면서 야구가 역시 멘탈스포츠라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단순히 팀을 바꿨다고만 해서 갑자기 없던 실력이 생긴 것일까? 분명 선수 본인의 절박한 심정과 더불어 각고의 노력을 했을 것이고 주위의 부담보다는 따뜻한 격려와 감독님의 신뢰와 기대에 대한 보은 의지 같은 것들이 김상현에게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자신감을 가지면서 비롯된 성공 사례가 아닌가 싶다.
적당한 욕심은 개인의 능력치를 극대화 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 욕심이 허황되지 않으려면 정확한 자기진단이 수반되어야 한다. 김상현의 욕심은 결코 과하지 않은 선에서 자기분발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 결과 영원히 잠잘 것 같았던 휴화산을 활화산으로 깨웠다.
그간 선수 본인 만이 알고 있는 뒷얘기야 얼마나 고생스러웠겠는가. 어쨌든 그의 화려한 비상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본인이 자기 자신을 믿고 적당한 욕심을 부린 것이 주효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인간승리에 박수를 보내고 앞으로도 한국프로야구계에 반짝 스타가 아닌 영원히 빛나는 선수로 기억되길 빈다.
P.S - 나는 LG팬이다. ㅜ_ㅜ
출처 : 스포츠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