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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형진의 씨네타운

[번외기사][취재파일] 2012 올해의 영화 & 올해 영화계의 사건들(1)_2012.12.17

 


한 해가 저물어가는 요즘, 시간만 나면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사건들을 꼽아보는 재미가 쏠쏠한데요, 무엇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풍성했던, 유례없는 호황을 기록한 2012년 국내 영화계를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 기자로 지냈던 것이 제게 일어난 최고의 사건인 것 같습니다. ^^
 
올해는 개인적으로 뉴스 리포트를 만드는 일 외에도 SBS FM 라디오 ‘공형진의 시네타운’에서 매주 신작을 소개하고 평하는 ‘영화보기 좋은 날’이라는 코너를 맡아 진행했었는데요, 그 덕분에 매주 평균 5~6개 정도 되는 개봉작들을 무조건 다 챙겨봐야 하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은 미션을 수행하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것조차 추억이고 뿌듯한 성취였던 것 같습니다. 전문가 근처에도 못 가긴 하나, 그래도 이만큼 개봉작을 모두 챙겨본 사람도 많지는 않을테니 제 멋대로 올해 영화계 사건들과 올해의 영화들 순위를 정해볼까 합니다.
 
보도국 기자에겐 자의든 타의든 ‘공정성’에 대한 잣대가 엄격하게 적용되는데요, 그래서 더더욱 뉴스에서 주관을 개입해 ‘평’을 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영화야 말로 개인의 취향과 주관을 반영하기 가장 쉬운 대상이죠, 그래서 이번 취재파일에서 만큼은 보도국 기자로서가 아닌 영화 애호가로서 한해 제가 본 삼백 여편의 영화들을 조목조목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거이 읽으며 한해를 마무리해 보시죠.
 
 
* 순위 선정엔 전적으로 저 개인의 취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요, 취향 외에도 작품성+참신함+대중성이 반영됐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내가 못 보고 지나간 영화들 중에 좋은 영화가 있었으면 어쩌지?’하는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참고해서 보시라, 정도의 톤으로 내밀고 싶은 순위입니다.
 
참고로 지난 2011년 제가 꼽은 ‘올해의 영화’는 1.돼지의 왕 2.완득이 3.비우티풀 이었습니다.[2012 올해의 영화]
 
1.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케빈에 대하여 (공동 1위)
 3.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4. 자전거 탄 소년
 5. 007 스카이폴
 6. 아르마딜로
 7. 킹 메이커
 8. 로맨스 조
 9. 멋진 악몽
 10.다크나이트 라이즈
 

 
[올해의 국내 영화]
 
1.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2. 로맨스 조
 3. 은교
 4. 내가 살인범이다
 5. 건축학개론
 6. 화차
 7. 두 개의 문
 8. 내 아내의 모든 것
 9. 용의자 X
 10. 내가 고백을 하면
 
[올해의 해외 영화]
 
1. 케빈에 대하여
 2.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3. 자전거 탄 소년
 4. 007 스카이폴
 5. 아르마딜로
 6. 킹 메이커
 7. 멋진 악몽
 8. 다크나이트 라이즈
 9.우리도 사랑일까
 10.아르고
 
[볼 때는 재밌었는데 곱씹을수록 순위가 내려갔던 영화]
 
1.도둑들
 2.광해
 3.어벤져스
 4.다른 나라에서
 5.미드나잇 인 파리
 6.프로메테우스
 7.아티스트
 8.킹 메이커
 9.부러진 화살
 10.피에타
 
[기대치가 커서 실망도 컸던 영화](바꿔 말하면 기대할만한 요소가 충분히 있었는데 실망스러웠던 영화, 꼽고 나니 주로 전편이 우수해 호평 받았던 시리즈물이 많고요, 혹은 원작이 좋았던 영화가 대부분이네요)
 
1.본 레거시
 2.런던 블라바드
 3.테이큰2
 4.토탈 리콜
 5.레드라이트
 6.워 호스
 7.철의 여인
 8.락 오브 에이지
 9.프로메테우스
 10.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기대 안했는데 만족감을 선사해 준 땡쓰 얼랏 영화]
 
1.케빈에 대하여
 2.로맨스 조
 3.언터처블:1%의 우정
 4.내가 살인범이다
 5.19곰 테드
 6.아르고
 7.로우리스:나쁜 영웅들
 8.심플 라이프
 9.서칭 포 슈가맨
 10.시스터
 
[사람들이 많이 안 봐서 아쉬웠던 영화]
 
1.늑대아이
 2.멋진 악몽
 3.자전거 탄 소년
 4.밤의 이야기
 5.아르마딜로
 6.피나
 7.가족 시네마
 8.두개의 문
 9.케빈에 대하여
 10.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대중적인 취향으로 봐선 ‘아니올시다’였지만 보는 동안 압도되며 연출가의 실력에 놀랐던 영화]
 
1.토리노의 말
 2.당신은 아직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3.멜랑콜리아
 4.폭풍의 언덕
 5.파우스트
 6.대학살의 신
 7.크로니클
 8.디어 한나
 9.볼케이노: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
 10.루퍼
 
[딱 기대만큼 좋았던 영화]
 
1.다크나이트 라이즈
 2.미션임파서블3- 고스트 프로토콜
 3.밀레니엄 제1부:여자를 증오한 남자들(할리우드판)
 4.미드나잇 인 파리
 5.피에타
 6.부러진 화살
 7.도둑들
 8.어벤져스
 9.남영동 1985
 10.내가 사는 피부
 
 
[2012 주목할 만한 영화계 사건]

올해 가장 이슈가 됐던 사건들은 ‘피에타’의 황금사자상 수상, 천만 영화 두편 탄생, 한국영화 관객 1억명 돌파 등이 있을 텐데요. 언론에서 많이 다뤄진 사건들 외에 개인적으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 사건들입니다. ^^

1.‘건축학개론’과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의 탄생

- 전 올해 한국영화가 거둬들인 가장 큰 성취는 이 두 편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두 편 모두 한국영화산업이 비성수기라고 일컫는 상반기에 개봉해 4백만 남짓한 관객을 동원했죠. 천만 영화가 두 편이나 나온 2012년 한국영화의 성취에 비춰보면 안타를 치는 정도였지만,(올해 한국 영화 중 4백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9편이나 됩니다) 사실 이 영화들  때문에 올해 한국영화가 질적으로도 우수한 한해였다고 자평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학개론’은 상업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호흡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기 드물게 잘 보여준 케이스였습니다. 특히나 멜로의 경우, 장르적 특성이 강렬하지 않아 배경이 되는 시공간의 설정에 힘을 기울이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실수가 잦은데요, 그래서 더욱 클리세가 난무하기 마련이고요.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히려는 의도로 비워두었던 여백이 그저 영화를 밋밋하게 보이게만 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많죠.

그런 의미에서 ‘건축학개론’은 위험한 모험을 시도합니다. 특정 세대만이 반응할 수 있는 코드를 삽입했거든요. 이 영화는 이용주 감독 개인의 신상으로 보나 영화가 숨겨놓은 (척 했지만 사실은 적극적으로 드러낸) 장치들로 보나 정확히 90년대 중반 학번, 신촌의 한 사립대학 출신의, 지금은 30대 후반이 된 성인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렇게 두고 보면, 이 영화를 ‘와, 내 이야기다!’하고 볼 수 있는 관객층은 매우 좁혀지죠. 저만 해도 신촌과는 먼 동네에서 대학을 다녔고, 정확히 10년 뒤인 2천년대 중반 학번이거든요. 그런데 왜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자기 이야기라며 이입할 수 있었던 걸까요.

건축학개론은 영화의 구체성과 보편성이 어떤 식으로 조화를 이뤄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건축학개론의 소재와 배경, 상황은 구체성을 가지며 리얼리티를 확보하지만, 동시에 주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첫사랑을 다룹니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경험하는 첫사랑은 사실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였죠. 우리 주위에 그런 사연 한번 안 겪은 사람 누가 있습니까. 이미 여러 번 영화가 우려먹은 ‘티백’ 같은 존재가 바로 무얼 해도 어설펐던 청춘 시절 겪은 아픈 첫사랑일 겁니다.

하지만 90년대 학번들이 (그 당시엔 그저 그랬는데 이제 와서 보니) 열광할 만한 전람회의 노래라든지, 스프레이, 힙합패션 같은 리얼리티 높은 소재들, 거기다 불세출의 조연 캐릭터 ‘납뜩이’가 더해지자 영화에 대한 호감도는 무지막지하게 상승했죠. 관객은 좋은 영화, 좋은 메시지를 만날 때면 누가 때려 말려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여기고 싶어하는 속성을 보이거든요, 그래서 영화가 설정한 ‘언젠가 한번은 서툴고 아팠던 첫사랑을 해 본+ 90년대 중반 학번의+신촌 근처 대학 출신+지금은 배우자가 있는, 그래서 일탈할 수 없이 매어있는 상태의 30대 후반’이라는 덧셈은 교집합이 아닌 합집합으로 작용해 관객은 이중 어느 것 하나만 자신의 조건과 겹치더라도 ‘내 이야기려니’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속여 버립니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가 직접 겪은 적도 없으면서 영화가 추억하는 그 시대 소품과 정서들에까지 향수를 느끼는 오지랖을 발휘하기에 이릅니다. ‘이건 내 이야기야!’라고 말하는 관객은 많았지만 사실 정말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는 영화였는데, 참 특이한 현상이죠.

‘건축학개론’은 결국 상업영화가 멀리 할리우드만 따라할 것이 아니라, 국내 관객들이 어느 지점에서 반응하고 어떤 것들에 리얼리티를 느끼는지 잘 캐치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을 보여줍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가 있습니다. 영화를 봤다면 잘 아시겠지만 구체적 사건과 배경으로 리얼리티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건축학개론보다 더더욱 맞아 떨어지는 영화입니다.(제목이 말해주듯 정말 공권력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며 부산을 떨었던 80년대 말, 90년대 초로 이어지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이니까요) ‘범죄와의 전쟁’은 여기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요소가 추가됩니다. 바로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의 장르 변주입니다.

갱스터 무비는 사실 마니아층이 가장 강력히 존재하는 장르물 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영화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대부’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죠. 아시아권에서도 없었던 건 아닙니다. ‘영웅본색’으로 시작해 ‘무간도’ 같은 느와르 영화는 홍콩영화가 어떻게 갱스터 장르를 소화하는지 잘 보여주었죠. 갱스터 무비는 진짜 잘 만들면 너무나 재미있고 대박인데, 우리나라에선 여태껏 잘 만들기 쉽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일단, 우리 문화권에서 소화하기엔 소재가 이질적이죠. 갱스터라고 하면, 한국 사회에선 ‘조폭’ 쯤 될텐데 아시겠지만 국내 조폭영화는 그야말로 소비되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닌 (안 좋은 의미로) 상업성만 강한 장르로 인식됐습니다. ‘조폭 영화=무식하고 단순한, 정과 의리에 끌려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폭력배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코믹영화’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이번 ‘범죄와의 전쟁’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매력적인 장르 갱스터 무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수많은 남자 주인공들은 모두 ‘아버지’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당한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버지, 못 배운 설움을 자식에게 전해주기 싫어 법이 허락하지 않은 영역까지 손을 뻗치는 아버지, 자신보다 힘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들이 영혼을 팔아 길러낸 자식 세대들...

우리 사회 마초 근성으로 대표되는 아버지들, 그들의 그릇된 부성, 그런 아버지들과 아들들이 모여 만든 남성중심의 사회. (부정적인 의미로) 가장 한국적인, 그래서 안타깝지만 그렇기에 가장 우리다운 방식의 갱스터 무비가 바로 올해 등장한 ‘범죄와의 전쟁’이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장르의 한국식 변주, 그리고 그런 영화가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인정받으며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올해 한국 영화계에 의미하는 바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관객동원 수보다도 이런 영화들이 한국 영화의 외연을 넓히고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아닐까 싶네요.

얘기가 길어져, 나머지 사건들은 다음 회에 쓰겠습니다. ^^  

출처 : SBS뉴스 / 류 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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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치기엔 내용도 아깝고, 씨네타운의 보물 류 란 기자님 이름이 너무 반가와 슬쩍 이곳에 끼워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