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스크랩/2010 history

공형진│그 남자가 바라본다_2010.4.14

그 남자가 바라본다

한동안, 공형진은 연관 검색어 같은 배우였다. 메인 게스트로 출연했던 MBC <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에서는 자기 얘기보다 장동건 얘기를 더 많이 해야 했고, 장동건이나 정우성이 속한 연예인 야구팀 플레이보이즈에서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동등한 입장의 단체사진이 아닌 ‘공형진 굴욕 사진’이 되었다. 하이틴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이후 <파이란>, <태극기 휘날리며>, <가문의 위기> 같은 다양한 영화에서 중요한 축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그만큼 <위대한 유산>과 <맨발의 기봉이>의 중국집 배달부처럼 수많은 작품에 우정 출연 혹은 특별 출연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보다는 그를 둘러싼 인맥을, 그리고 그 인맥을 관리하는 노하우를 궁금해 했다. 그래서 그의 가장 최근 작품인 KBS <추노>는 여태 쌓아왔고 앞으로도 쌓아나갈 공형진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비로소 모든 연관 검색어에서 벗어나 배우 공형진 자체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인맥과 연기, 공형진을 설명하는 두 가지 키워드



모든 인물들이 몸과 몸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만들어간 <추노> 안에서 공형진이 연기한 업복이는 굉장히 독특한 포지션을 가진 인물이다. 원 샷 원 킬의 명중률을 자랑하는 관동 포수 출신인 그는 “총 든 놈이 제일 무섭다”는 대길이(장혁)의 말대로 한양 제일의 주먹 대길이와 조선 최고의 무장 송태하(오지호)보다 더 강한 인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총을 내려놓았을 땐 주인 양반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무력한 노비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많은 능력과 감정을 안으로 갈무리하는 인물이고, 그 때문에 자신의 강함을 끊임없이 외향적으로 드러내는 대길이나 송태하, 노비라는 굴레를 스스로 받아들인 다른 노비들과 달리, 참는 사람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것은 연기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추노>에서 공형진이 만들어낸 인상적 장면들을 캐릭터의 매력에 묻어가는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건 그래서다.

주인 양반에 대한 분노를, 그리고 초복이(민지아)에 대한 애정을 꾹꾹 억누르며 최대한 건조하게 말하는 연기도 주목할 만하지만 무엇보다 눈빛으로 수많은 감정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공형진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애초에 말수가 적은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저격수로서의 그는 유독 목표물을 응시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총을 겨누는 자세는 그때마다 거의 동일하지만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 그의 눈이 담아내는 감정은 전혀 달랐다. 처음 대길을 노렸을 때의 분노와 스스로 인간 같지 않다고 여기는 양반을 사냥할 때의 냉혹함, 그리고 천지호의 시체를 안고 속으로 우는 대길을 겨눌 때의 연민과 선혜청에서 동료 노비를 쏠 때의 자괴감까지 그는 정말로 눈을 통해 말보다 짧고 함축적으로 업복이의 내면을 드러냈다. <추노>에서 최고의 장면으로 꼽을만한 그의 마지막 시선이 언뜻 무심해 보였음에도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배우 공형진의 능력을 증명한 이 지점에서 그는 다시 “자기 몫을 하는 사람들과의 앙상블”과 “(<추노>) 스태프들에게 간식을 많이 사는” 인간관계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게 있어 “연기는 사람들끼리 살을 부비며 하는 작업”이고, 결국 업복이를 ‘잘’ 연기한다는 것은 <추노>라는 거대한 그림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최대한 즐겁고 능동적인 분위기로 이끄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넓은 인맥을 가진 공형진과 연기 잘하는 공형진은 조우한다.


그가 만들어갈 연관 검색어


스스로 “가장 소중한 작품”이라 평가하는 <파이란>에서 연기한 경수의 경박하면서도 속정 깊은 모습은 강재(최민식)와의 농담과 진담을 오가는 대화 안에서 드러나는 것이고, 그것은 동시에 그가 존경하는 선배인 최민식과 국밥집에서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카메라 바깥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반대로 그가 장동건, 원빈과 ‘절친’이 될 수 있었던 건,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두 배우가 연기한 형제 사이에서 “둘이 한꺼번에 머하러 와. 한 집에서 한 명만 차출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러다 둘 다 뒈지면 제사는 누가 지내주나. 뭐 나라에서 지내주나?”라고 찰진 너스레를 떠는 영만을 제대로 연기하며 출연배우들 모두 만족해할만한 작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가 tvN <택시>를 통해 “모르던 사람을 알아가고, 알던 사람을 더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연기에 많은 도움을 얻는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그래서 지금도, 공형진은 연관 검색어 같은 배우다. 영화든 드라마든 방송이든 수많은 연관 검색어들이 관계를 맺을 때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그런 결과물 없이는 배역도, 연기도, 인기도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걸 언제나 잊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추노>에서 보여줬던 눈빛 연기는 고독한 천재성의 발현 따위가 아닌, 상대 배우를 바라보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시청자를 바라보는 관계망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말, <내 남자는 원시인>을 통해 생애 첫 1인극에 도전했던 그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이건 형밖에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게 원래 목적”이었다고 말하는 건, 혼자 무대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역설적으로 그 바깥에서 수많은 동료들과 쌓아온 관계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과 함께 하는 ‘플레이보이즈’를 늘려나가고, 자신이 뛸 수 있는 필드를 넓혀나가고, 연기자로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다양하게 만들어 간다. 여전히 누군가의 연관 검색어가 되고, 또 누군가를 자신의 연관 검색어로 만들며.

출처 : 10asia

<다음은 텐아시아에서 퍼온 댓글>=====================================================================================================

applepie(2010.04.17) : 공형진에 대해 이렇게 유려하고 사려깊은 글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무튼 저도 추노를 통해 다시 보게 된 배우입니다.
panzergo(2010.04.14) : 기병대의 경우에도 총을 장비한 기병을 `드라군` 즉, 불을 뿜는 용이라고 칭하여 별도로 구분짓기도 하였고... 흥선대원군이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서 전국에서 `포수`들을 모아서 부대를 만들었던 것도 유명한 일화지요. 총의 발명, 혹은 대량보급은 `기사`의 시대, 그리고 칼의 시대를 끝내며 `일반인`들도 전쟁의 주역이 될 수 있게 하였지만, 동시에 손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의 보급은 어린아이까지도 어른을 쉽게 죽일 수 있게하여, 수많은 비극을 낳고 있기도 합니다. 민초를 대변하는 업복이가 `살상력의 대중화`를 가져온 병기를 다룬다는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 될 수도 있겠군요.
panzergo(2010.04.14) : 추노에서의 공형진 최강론을 밀덕의 시각으로 부연설명하자면... 우선 흔히 칼싸움 잘하는 세명으로 알려져 있는 삼총사. 원래의 이름은 `The Three Musketeers`로 올곧게 번역하면 `세명의 장총잡이`입니다. 머스켓이 원래 총이름이거든요. 구식총은 추노에서도 보았듯이 다루는데 있어 상당한 기술을 요구하는데,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총`을 다루는 사람, 특히 사냥꾼은 별도의 부대를 편성하여 오늘날의 특공대처럼 운영해 왔습니다. 영국에서는 부대명칭에 라이플이라는 총의 종류를 넣기도 했고, 독일에서는 공수부대를 `팔슈름야거(Fallschirmjager)`즉 `강하하는 사냥꾼`으로 통칭하기도 했습니다.
woodyallen(2010.04.14) : 신고추노의 진정한 주인공은 업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캐릭터를 몹시 잘 연기해 준 공형진씨에게 찬사를~
kinny97(2010.04.14) : 추노에서의 연기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그래서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