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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다망

[공형진의 공사다망] 잰걸음 큰 걸음_2009.10.26

나는 '운동광'이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타고난 운동 신경과 센스(?) 덕분에 주위에서 곧잘 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런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남자로 운동을 잘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유리한 특기이자 장기이었다.

지금껏 처음 해보는 운동도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저 잘하는 사람들 어깨너머로 보고 흉내를 내더라도 따라 하곤 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수준급의 실력을 갖췄다. 지금도 시간을 내서 열성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으니 내가 가진 운동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 하리라 믿는다.

오죽하면 다음 생에서는 반드시 프로 스포츠맨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까? 물론 운동선수로서 성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들 정도로 좋아한다. 이렇게 운동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정말 싫어하고 무서워하며 존경하는 종목이 몇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라톤이다.

나는 왜 마라톤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맹목적으로 달리는 줄만 알았고 성격상 그냥 달리기만 하는 것이 지루해 보이고 이상하게(?)까지 느껴졌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명실공히 국내 최고 마라토너였던 이봉주가 화려한 마라톤 인생에 마침표를 성대하게 찍었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이 지구를 8바퀴나 돌만큼 역주에 역주를 펼쳤고 진정한 승자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었다.

한국 신기록을 2번이나 작성했고, 풀코스를 41번 완주했다. 올림픽 은메달 리스트로 한때 '2인자'의 모습처럼 비춰진 적도 있지만 그의 지나온 행보를 보면 메달 색깔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시안게임 2연패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보스톤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 그의 경력에 분명한 방점이기도 하지만 그가 보여준 성실함과 묵묵함이 더욱 빛을 발하며 많은 후배들과 국민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국민 마라토너라 불리는데 손색이 없다. 그가 한 얘기 중에 결코 우승만을 쫓아 레이스를 펼친 것이 아니라 그 자신과의 싸움에 지지 않기 위해서 달렸다라는 말은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에밀자토백이란 불멸의 육상선수는 '우승을 하고 싶다면 100m 단거리를 뛰어라. 하지만 인생을 알고 싶다면 마라톤을 하길 권한다'라고 얘기했다.


우리네 인생도 단거리 승부가 아닌 마라톤처럼 길고 긴 장기 레이스이다. 나는 이봉주 선수를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반성하게 된다. 인생이란 결코 일희일비의 반복이 아닌 것을 깊이 깨닫고 좀더 진중한 승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인생의 절반을 멋지게 장식한 이봉주 선수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며 그의 인생 제2막을 기대해본다.

P.S - 나도 인생의 2막이 막 시작됐다.


출처 : 스포츠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