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꿈이 있는 배우, 공형진
공형진은 능수능란하다. 장르와 비중에 상관없이 늘 감칠맛 나게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낸다. 다섯 싱글의 좌충우돌 커플 탄생기를 그린 새영화 <커플즈>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믿지 않는 깡패 두목 병찬을 연기한 그는 느와르와 코미디를 오가며 액션도 펼치고, 애교도 부리고, 로맨스까지 벌인다. 역시 능수능란하다.
약 7년 전 맥스무비와 인터뷰에서 공형진은 “배우 이외의 삶은 단 한 순간도 생각해 본적 없다”고 말했었다. 돌이켜보니 참 의외다. 지금 그는 누구보다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배우니까. 7년 전 그 마음은 변한 걸까? 아니, 만나보니 판단이 선다. 배우로서 공형진의 꿈은 더욱 확고해졌다.
● 내가 봐도 액션신 멋져
정용기 감독과 재회한 게 5년 만이었죠?
<가문의 위기> <가문의 부활>을 같이 해서 잘 됐었는데, <원스 어폰 어 타임>이랑 <홍길동의 후예>는 같이 못했죠. 그 때는 제게 얘기도 안 하더라고요. 이번 영화 제의를 받으면서 정용기 감독이 연출한다 길래 바로 전화해서 대뜸 그랬어요. ‘날 원해?’(웃음) 그랬더니 ‘완전 원해요’하더라고요. 알았다고 그럼 재밌게 해보자고 했죠.
시나리오는 처음 봤을 때 어땠나요?
이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이전에도 제안이 있었던 영화였어요. 그래서 더 반가웠죠. 당시에는 이런 저런 문제로 딜레이 됐는데, 역시 이야기가 좋으면 언제든 영화는 빛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딱 봐도 굉장히 재미는 설정의 영화잖아요. 특이했던 건 그전에는 복남 역으로 제의를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병찬 역에 캐스팅이 됐다는 거죠. 병찬도 멋있는 캐릭터였으니까 기분 좋게 OK했어요.
오정세가 연기한 복남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겠어요.
내가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도 했죠. 그런데 오정세가 진짜 잘했어요. <커플즈>에서 복남이 차지하는 몫이 의외로 커요. 캐릭터를 연결하면서 웃음까지 줘야 하는 인물이거든요. 오정세는 오버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복남의 연기를 잘 해냈다고 봐요.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는데, 오정세는 보고 있으면 내 예전 모습을 보는 느낌이 들어요. 한창 코미디 연기를 하던 시절의 저요.(웃음) 연기력이 일단 탄탄한 친구라 앞으로 더 좋은 역할을 많이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에요. <째째한 로맨스>에서도 대단했잖아요. 보면서 ‘쟤 누구지?’ 계속 그랬어요.
영화에서 굉장히 멋지게 등장해요. 홍콩 느와르의 한 장면처럼요.
그렇게 보여진다면 정말 다행이에요. 홍콩 느와르에 나오는 보스같은 느낌, 진짜 그런 거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웃음기 없이 진지한 거요. 느와르가 됐는 남자영화가 됐든 멜로영화가 됐든 상관없이 그런 캐릭터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요.
짧지만 액션도 보여줬어요.
이번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신 중에 하나예요. 짧게 나온 건 아쉽죠. 그 장면 찍을 때는 스태프들도 되게 좋아했어요. 제가 액션이 좀 되니까 한 시간 반 만에 후딱 해치웠거든요. 나중에 모니터 해보니 그림도 꽤 잘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더 넣자고 했는데 ‘선배님 이게 길어지면 좀’ 이러면서 곤란해하더라고요.(웃음)
병찬의 캐릭터는 무게감과 코미디의 균형잡기가 핵심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무턱대고 웃기거나 힘만 주는 연기는 하지 않았어요. 분명히 코믹함도 있어야 돼지만 무게감을 잃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병찬이란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합당한 게 뭘까를 계속 찾았죠. 원래는 좀더 가볍고, 애교도 많은 캐릭터로 설정해볼까 했었는데, 보스의 느낌을 빼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좀더 무겁게 가보자고 했는데, 정용기 감독하고도 뜻이 잘 맞았어요.
● 이시영은 코미디 DNA가 있다
사실 처음에 <커플즈>라는 제목만 듣고는 뻔한 로맨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굉장히 독특하더라고요.
<커플즈>를 선택한 것도 그 독특한 구조가 끌렸던 이유가 컸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캐릭터 영화잖아요. 전 그런 영화가 좋아요. <재키 브라운>(1997)이나 <트루 로맨스>(1993), <어 퓨 굿 맨>(1992) 같은 거. 코엔 형제 영화들도 좋고요. 그런 영화 보면 캐릭터가 각자 차지하고 있는 포션이 굉장히 탄탄해요. 주인공 하나 둘이 끌고 가는 영화가 아니죠. 배우들은 자기 장점이나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결국 이야기 구조 속에 인물이 제 역할을 다하는 작품이 웰메이드 영화가 되지 않나 싶어요.
정용기 감독은 확실히 캐릭터를 만드는데 재주가 뛰어난 것 같아요.
물론이죠. 그리고 또 감독님이 뭐가 좋냐면, 현장에서 진행도 굉장히 빠르고 까다롭지도 않아요. 그런데 나중에 결과물을 보면 또 굉장히 탄탄하게 나와요. 그런 게 정용기 감독의 능력인 거 같아요. 감독으로서 뭐가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뭘 하든 낭비하는 게 별로 없어요. 제가 봤을 때 어떤 장르를 찍어도 자기 몫은 해낼 감독이에요.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뭐였나요?
병찬의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나리에게 고백하는 신이었어요. 나리가 꽃뱀이란 걸 알면서도 그걸 감수하고 말을 하죠. ‘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나는 다 정리했으니…’ 이런 식으로요. 이게 로맨스니까 그런 장면에서는 감정이 온전히 전달됐으면 했어요. 물론 그 와중에도 코믹한 애드리브가 있어요. ‘시끄러워 그만 울어, 이제 시끄러워지려고 해’(웃음)
즉흥 연기가 정말 많았다고 들었어요.
애드리브를 따로 준비하진 않아요. 그런데 누가 봐도 애드리브인 것처럼 하긴 하죠. 그런데 이번영화에선 반대로 애드리브를 마치 대본에 있는 것처럼 연기했어요. 그게 영화랑 조화를 이루는 데는 더 좋으니까요.
애드리브로 탄생한 신이 뭐가 있었죠?
돈가방 잃어버린 부하가 ‘죽여주십시오 형님’이라고 할 때 ‘지금?’이라고 받았던 거.(웃음) 복남이 머리에 팬티 씌우는 장면도 그랬고, 수면제 잘 못 먹고 ‘너도 설사 많이 했냐? 나는 헐었다’ 이런 것도 있었죠. 나름 수위도 생각하고 가볍지 않게 조율해서 한 거예요.
나리가 돈가방을 갈취하려고 몰래 수면제를 넣다가 병찬한테 들키는 신은 전체가 다 애드리브예요. 원래는 수면제를 넣는 장면을 보지 못하고 와인을 마신 후 쓰러지는 걸로 끝이죠. 그런데 리허설 하다가 제가 감독한테 ‘알자. 이거 병찬이가 알면 더 재밌을거야. 그런 다음에 시영이가 어떻게 받아 치는지도 보자’ 그랬어요. 감독이 OK를 내리고, 시영이한테 얘길 했죠. 그리고 나서 서로 상의하지 않고 따로 준비해서 탄생한 장면이에요. 당황하면서 ‘비타민이라고 나도 많이 넣어야지’ 이런 연기는 다 시영이가 만들었어요. 전 그런 게 호흡이 아닌가 싶어요.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놔두니까 자유스럽게 좋은 연기가 나왔어요. 그리고 이시영이란 배우는 코미디에 대한 DNA가 기본적으로 풍부한 것 같아요.(웃음)
파트너로 나온 이시영이 ‘공형진 선배는 호불호가 강해서 맘에 안 들면 사람 취급도 안 한다고 들어서 처음에 무서웠다’고 기자회견 때 폭로했는데, 해명이 필요합니다.
기분 좋던데요. 의식적인 얘기였겠지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친하다는 증거거든요. 괜히 뿌듯하더라고요. 시영이랑 첫 작품인데 호흡도 잘 맞고 금방 친해졌어요. 주로 제가 들어주는 입장이었지만 서로 속 얘기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 전 알려진 대로 미친 인맥이 아니에요. 낯도 굉장히 많이 가려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의외로 조용한 편이고요. 그래서 한 번이라도 인연이 닿으면 성심 성의껏 대해요. 한 작품을 하게 됐다고 가식적으로 친해지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고 좀 더 들어주고 나를 보여주죠. 누구랑 친하다, 미친 인맥이다, 이런 말 들을 때마다 민망한 마음이에요.
● 영원히 잊지 못할 영화 <파이란>
병찬의 프로필이 ‘사랑은 절대 없을 거라 믿었던 거친 남자’인데, 전 좀 엉뚱한 상상을 해봤어요. <파이란>의 경수가 훗날 저런 캐릭터가 됐으면 어땠을까 하고요. 사랑을 깨닫고 저 세상으로 간 강재의 죽음을 목격했으니, 사랑은 없을 거라 믿는 보스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웃음)
생각도 못했는데 재밌네요.(웃음) 그렇게 연관 지어 주면 저야 행복하죠. 경수는 지금까지도 가장 아끼는 캐릭터거든요. 경수가 만약 보스가 됐다면 병찬보다는 좀 더 가벼운 사람이었을 거예요. 강재의 영향으로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다 버리는 짓은 안 했을 테니 그런 건 병찬과 닮았네요.
여전히 <파이란>과 경수를 최고의 작품이자 캐릭터로 간직하고 계시네요. 전 <연애시대>의 공준표나 최근 <추노>의 업복이도 좋았어요.
그건 쉽게 안 변할 것 같아요. 배우로서 저를 잊게 해준 영화기 때문에. 요즘엔 <파이란2>나 리메이크를 찍고 싶다는 생각까지 해요. 굉장히 좋은 영화로 평가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회자되지만 당시엔 흥행에서 실패했었거든요. 만약에 지금 그런 영화가 나온다면 대박나지 않을까요?
만약 리메이크 하게 된다면 같은 역할로요?
아뇨. 이번엔 강재를 해봐야죠. 강제를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뭐 민식이 형이 다시 강재를 한다고 하면, 제가 다시 경수를 할 수도 있어요. 물론 민식이 형은 분명히 안 하겠다고 하시겠지만.(웃음) 당시 <파이란> 할 때 민식이 형이 딱 지금 내 나이쯤이었거든요. 제가 강재가 되면 그보다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들어요. 정말 최민식이라는 배우는 우리나라 1등인 것 같아요.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무조건 알파치노 같은 배우가 됐을 거에요.
그런데 언제까지 대표작이 <파이란>일 수는 없잖아요.
물론 또 다른 대표작을 만들어야죠. 그런데 흥행에서 대박나거나 연기에 대해 극찬 받는 작품이 나오더라도, 내 마음의 1번은 <파이란>일 거에요. 죽을 때까지.
● 진정한 멀티플레이어
연기 말고도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주연배우가 되는 걸 막지는 않나요? 작품에만 몰두하기가 힘드니까요.
그런 부분들도 사실 없진 않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건 정말 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또 도움도 많이 돼요. 나에게 저해가 되는 부분이면 진작에 끊었겠죠. <공형진의 씨네타운> DJ는 배우로서 공부도 많이 돼요. 그것도 일종의 영화 일이나 다름 없거든요. 작품이나 감독에 대해서 얘기하는 부분이니까요. <택시> 같은 경우는 호스트로서 게스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게 된 게 소득이에요. 남을 말을 듣는 습관이 생겼고, 화술도 많이 늘었고요. 많은 사람들을 접하는 건 배우로서도 이롭죠.
그런데 그런 일을 병행하는 것이 영화를 하는 데 큰 영향이 된다고는 생각 안 해요. 이번 영화를 보면서도 병찬이 등장할 때 ‘어! <택시> MC다, <씨네타운> DJ다’하지 않잖아요. 그저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건데, 사실 그것도 문제가 안돼죠.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잠을 줄여서 하면 되니까.
배우 외적으로 일을 하는 걸 두고 ‘그런 걸 굳이 왜 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 전 그런 시선을 주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어요. ‘그래? 좋아, 내가 다 해주마, 그리고 나중에 작품에서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어떻게 되나. 내가 진짜 진정한 멀티플레이어가 뭔지 보여줄게’ 이런 욕심이죠.
출처 : 맥스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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