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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g Story

공형진(2) - 배우 이외의 삶은 단 한순간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_2004.4.16

아침형 인간은 나의 적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진리를 거부한 이 남자의 하루 일과를 지켜보다 보면 백수가 봐도 한심할 정도다. ‘일하지 않고 평생 놀고먹을 순 없을까’ 머리 속에 든 생각이라고는 이것뿐인 이 남자의 이름은 노상구이다. 좋은 말로 하면 프리랜서이고 나쁜 말로 하면 백수인 노상구는 죽마고우인 만철(주진모)의 ‘양다리 연애’에 차질을 주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그런데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급기야 커밍아웃까지 선언하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 이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다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거짓말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말이 될 정도로 상황을 종잡을 수 없게 된 노상구와 정만철은 급기야 이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서로의 입술을 맞추게 된다. “주진모씨와 키스씬은 극중에서 꼭 필요한 장면이었어요. 기분이야 좋았겠습니까.(웃음) 하지만 그 장면을 보고 관객들이 웃을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해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공형진의 이름에서 일회성 웃음보다는 여운과 페이소스를 먼저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스크린상에서 비쳐진 공형진은 언제나 관객들에게 진한 웃음을 주는 수호천사였다. <라이어>에서 공형진이 맡은 노상구라는 캐릭터는 그의 그림자가 아닐까 할 정도로 닮은 구석이 많다. 그가 지금까지

했던 역할과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그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변화무쌍한 캐릭터가 노상구 안에 다 담겨져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배우의 몫. 공형진은 자신보다 노상구 역할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스크린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영화감독에서 배우로 꿈을 전환하다

감독의 꿈을 품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공형진은 단편영화를 찍으면서 카메라 뷰파인더 안에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에 금세 실증을 느끼게 된다.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무언가를 담아내는 사람이 아닌, 카메라 뷰파인더에 찍히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공형진은 그때부터 연기자의 꿈을 품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난 후 감독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 것 같았다.

“맹세코 없어요. 체질적으로 맞지도 않고요. 영화를 할수록 어렵고 조심스러워요. 감독이 얼마나 복잡한 직업인데요. 외국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으니까 배우들도 감독을 겸해서 할 수 있죠.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선 감독이 혼자 도맡아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그때 제가 감독의 꿈을 접고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단편영화의 작업 환경이 그런데 장편영화는 오죽 하겠어요.(웃음) 거기에 비하면 배우란 직업은 정말 편한 것 같아요. 오로지 연기 하나만 잘 하면 되니까요. 영화 마케팅, 기획, 제작 쪽에는 관심이 있지만, 연출쪽은 저의 길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중앙대학교 재학시절 찍은 단편영화를 보면 제가 이런 말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작품이 아직도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네요.(웃음)”

그 작품에 빛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공형진은 스스로 배우처럼 로맨틱하지도 않으며, 배우처럼 멋지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름다운 배우였다. 자신이 감추고 싶은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꺼내놓은 공형진의 모습은 자신에게 다가오라는 친구의 손짓처럼 다정해보인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배우가 수백 번 반복해서 지겹게 답변을 해야 하는 무의미한 질문을 건네도 공형진은 늘 성실하게 답변했다. 인터뷰하는 장소의 혼탁한 공기(?)마저 바꿀 정도로 그의 답변에는 활력으로 넘쳐났다.

1990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스크린 데뷔전을 치렀지만, 정식적인 주연 데뷔작이 그를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13년 뒤였다. 정준호와 호흡을 맞춘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 처음으로 주연배우로 영화작업에 임하게 된 공형진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감초 역할로 객석의 웃음을 책임지는 배우였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 배우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이어>는 그의 두 번째 주연작. 달라진 것이 있을 법도 했다.

“저는 이제 주연배우가 되었다고 해서 조연은 두 번 다시 못하겠다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아요. 배우는 역할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지, 비중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시나리오에 나온 캐릭터를 공형진이라는 배우가 빛낼 수 있다면 저는 비중, 개런티에 상관없이 출연할 마음이 있어요. 공형진이라는 배우가 이제 먹고 살만 하니까 저런 소리를 한다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진심이에요. ‘평생 주연’ 혹은 ‘평생 조연’ 같은 촌스런 생각은 버린 지 오래됐어요. 조연이건 주연이건 간에 제가 참여한 작품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요.”

("공형진(3) - 배우 이외의 삶은 단 한순간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에 계속)

출처 : 맥스무비